느티나무도서관이 있는 수지구 수풍로 116번길 22에서 횡단보도를 한 번 건너면 바로 그곳에 ‘삼풍동 초입마을 아파트(이하 삼풍동)’이 있습니다. 1994년 조성된 이 아파트는 수지 최초 리모델링 아파트 단지로 선정되어 2030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를 앞두고 있답니다.
이주 기한 120일 동안(2026년 2월2일~6월1일) 1,620세대의 모든 입주민들은 이주를 끝냈고, 현재 이사 날짜를 못 맞춘 몇몇 세대들의 짐만 보관된 상태로 사람들의 출입은 “통제”되고 있습니다.
수지구는 1980대 초 대단위 택지 개발이 이루어져 많은 인구가 유입되었고, 2001년 12월 수지읍에서 ‘수지출장소’로, 2005년 10월 “수지구”로 승격되었지요. 이 시간의 궤적을 오롯이 함께했던 삼풍동은 몇 년 후 이름도 외관도 바뀔 예정입니다.
“이야기는 투명한 나비 같아서 가만히 듣지 않으면 사라진다.”라는 생각에 느티나무도서관은 지난 1월부터 삼풍동의 이야기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기록하지 않으면 이야기는 휘발되고 마니까요.
아파트 입주민은 물론 아파트 상가 입주자, 아파트 화요장 상인, 주변 상가 주인장, 관리사무소 직원, 경비원, 환경미화원, 조합 사무실까지...매주 삼풍동을 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조금씩 변해가는 삼풍동의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이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곳은 아파트 경로당이었어요. 매주 10여 명의 선배 시민을 만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안부를 여쭈었답니다. 처음 만나 뵈었을 때, 공사가 완료되면 다시 돌아오실 거냐는 물음에 대한 한 어르신의 답변이 귀에 박혔습니다.
“그땐 하늘나라에 있겠지~.”
이 말 한마디가 어찌나 마음을 두드리던지요. 그래서였을 겁니다. 매주 경로당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이주가 시작되면서 그동안 익숙해졌던 얼굴들을 볼 수 없었고, 남아 있는 경로당 어르신께 전해들은 이야기는 ‘이사하니 말할 사람도 없고, 갈 때도 없고, 여기저기 다~ 아프다.’ 라는 안타까운 소식만…
지난 6월 7일은 경로당 부회장님의 이사날이었습니다.
경로당 어르신들 하나 둘 이사할 때마다 모두 다 배웅하고, 경로당 최종 정리까지 마친 후, 누구의 배웅도 없이 가장 마지막으로 이사하는 부회장님을 저희가 배웅하고 싶어서 아침부터 서둘러 삼풍동으로 향했습니다.
삼풍동에서만 100여 세대의 짐들을 옮긴 이사짐센터 직원들과 부회장님의 아드님은 버릴 짐들을 체크합니다.
“한두 명 이사할 때는 몰랐는데, 이사 기한이 다가오고 모두들 떠나고 나니, 몸과 마음이 조금씩 아프신 것 같아요. 이러다 큰 병 치르시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네요.” 자신의 헛헛함을 뒤로하고, 어머니를 걱정하는 마음이 앞서는 환갑을 앞둔 아들의 말입니다.
이사 기한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둔 5월31일, 물과 전기가 끊겨서 대구 친구네서, 삼풍동 근처 손녀집에서 일주일동안 머물다 자신이 살던 집으로 돌아온 부회장님을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짐 무더기 틈 사이를 걸으면서 무언가 찾으시더니 보자기에 싼 상자 하나를 들고 나옵니다.
"이거 입을 날 있겠나?” 하시며 옷 수거함으로 가시는 부회장님의 걸음을 멈춰 세웠습니다. ‘버릴까 말까?’ 이사하는 날 아침까지 고민했을 물건이 무엇인지 몹시도 궁금했거든요.
상자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한복’이 있었습니다. 흰색 저고리에 파란 치마. 아들의 결혼식 날 지은 한복이었을까요? 옷 수거함에 버려질 운명에서 건져 내어 일단 도서관에 보관하겠다며 무작정 가지고 왔습니다. 입을 사람이 있으면 누구라도 주라고 하셨지만, 당분간은 도서관 한 켠에 고이 보관할 예정입니다. 상자를 건네 받은 순간, 불현듯 이 한복을 입고 도서관을 거니는 부회장님을 상상해봤거든요. 이 한복을 입을 날을 만들어 드리고 싶은 괜한 오지랖이 발동하더라는~^^
하남, 서울, 안양, 수원, 기흥, 동백, 신갈… 경로당 어르신들이 이사한 지역들입니다.
삼풍동 인근 또는 도서관에서 대중교통으로 이동 가능한 수지구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한 어르신들도 절반정도 됩니다. 부담스럽지 않게 느티나무도서관으로 마실나오실 수 있는 적당한 거리에 계셔서 참! 다행입니다.
느티나무도서관은 더 많은 시민들과 함께 삼풍동 이야기를 모으고, 자료화하는 등 여러 활동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문의 : 느티나무도서관 3층 070-7777-46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