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국에 와서 ‘나 자신을 찾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 과정에는 물론 고통이 따르겠지만,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늘 노력하고 있어요.”

지난 12월 27일, 뜰아래에서 티타임을 열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온 샤이마 엘사이드Shaimaa Elsaied님과 대한민국에서 난민이자 이웃으로 살아가는 일을 이야기 나눴습니다.
함께 나눈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Q.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되었나요?
“2011년 이집트 혁명 이후, 군부 정권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던 언론인들은 점점 위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기자로 일하며 동료가 체포되는 일을 목격했어요. 저와 남편도 체포될 위험에 처했고 2살이었던 딸과 함께 이집트를 떠나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저희 가족은 안전한 나라인 동시에 그 당시에는 비자 없이 갈 수 있는 나라였던 한국에 오게 되었어요.”
샤이마 님은 이집트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은 이집트 사회가 겪어온 정치적 변화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며,
사회적 맥락 위에 놓여 있었는지를 살펴볼 한 구절을 소개했습니다.
가말 함단의 <이집트의 성격>을 이집트어, 한국어, 영어로 함께 낭독했어요.

Q. 한국에서 여성으로서 아이, 가족, 일과 함께 살아가는 건 어떤가요?
“솔직히 말하면, 여성으로서 아이를 키우고 가족을 돌보면서 일도 함께 병행하는 건 정말 쉽지 않아요.
그렇지만 제가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제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와 신념을 잊지 않으려고 늘 스스로를 다잡고 있어요.
한국에서의 시간은 제 자신을 다시 찾는 과정이기도 했어요.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죠. 다만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했어요.
한편으로는 제가 여성으로서 고국에 있을 때보다 한국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고 있다고 느낍니다.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여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동시에, 공장 노동자로서의 삶에서는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낀 순간들도 많았습니다.
이처럼 제 삶에는 늘 상반된 경험과 대비되는 현실이 공존합니다.
특히 무슬림 여성으로서 히잡을 쓰고 살아가는 일,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책임은 늘 쉽지 않은 숙제입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난민 여성들, 난민으로 살아가는 엄마들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현실이에요.
어떻게 하면 한국사회에 더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시민으로서의 제도와 시스템 안에서 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Q. 난민생활을 하시면서 문화적 차이나 정체성에 대해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으셨을 것 같아요.
특히 무슬림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활동가로서, 노동자로서의 여러 정체성을 갖고 한국에서 지내시는데 어떤 역할이 가장 어려우신가요?
“먼저 무슬림 여성으로서의 경험부터 이야기하고 싶어요. 한국에 와서 가장 크게 부딪힌 문제 중 하나는 히잡을 쓴 외모 때문에 취업이 어려웠다는 점이에요.
면접 자리에서 히잡을 보고 바로 거절당하거나 ‘왜 그걸 쓰고 있느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그럴 때마다 ‘내가 이 사회에서 이상한 존재가 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그 생각을 내려놓기로 했어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했죠.
“나는 계속 히잡을 쓸 거고, 그 상태로 나 자신을 찾아갈 거야.”
언젠가는 제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고 저라는 사람 자체를 받아들여주는 이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처음 공장에서 일할 때는 동료직원들도 낯설어했지만,
제가 성실하게 일하고, 라마단 기간에도 금식하면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씩 태도가 바뀌는 걸 느꼈어요.
2년 후, 그 공장에서 히잡을 쓴 여성 네 명을 새로 채용했을 때 저는 그 변화를 분명히 느꼈어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먼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작은 변화를 만들어냈다고 느꼈어요.”
“엄마로서의 역할도 쉽지 않아요. 다문화 환경에서 양육한다는 건 많은 고민을 수반합니다.
우리에게는 종교가 있고, 고향의 문화가 있고, 한국 사회의 문화와는 다른 지점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저와 남편은 어떻게 하면 한국 사회 안에서 살아가면서도 우리 문화와 정체성을 존중하며 아이를 키울 수 있을지 늘 함께 고민해요.
저는 아이가 있는 다른 난민 친구들에게도 모국어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라고 늘 권해요.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고 싶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의 문화와 정체성을 잊을 필요는 없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마지막으로 활동가로서의 역할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는 2020년부터 지금까지 난민 프로그램 활동에 참여하고 있어요.
이 활동은 저 개인에게만 의미 있는 일이 아니라, 다른 난민들과 소수자들에게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학교를 찾아가 학생들과 난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세대의 인식을 바꾸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과정에서 회사한테 “왜 그렇게 자주 쉬느냐”는 말을 듣기도 했어요. 저는 연차를 사용한 것이지만,
불편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일을 멈출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 활동은 제가 기자로서 해왔던 일과 닮아 있고, 다른 방식의 저널리즘이라고 느끼기 때문이에요.
여러 역할을 동시에 살아가는 건 어렵지만, 이 모든 정체성이 지금의 저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요.”

Q. 샤이마 님은 이집트서 12년 간 기자로 일하신 이력이 있는데, 기자가 된 계기가 있나요?
어렸을 때부터 기자가 꿈이었는지 혹은 어릴 때 가졌던 또 다른 꿈이 있는지 궁금해요.
“이집트에서 저는 카이로대학교 미디어학과를 졸업했어요. 사실 기자가 되는 건 아버지의 바람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이 대학에 진학해 미디어와 대중소통을 공부하길 원하셨어요. 저는 아버지의 바람을 이루고 싶었고, 그 선택이 결국 저를 기자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제가 기자로 일하던 시기는 이집트의 정치 상황이 빠르게 변화하던 때였어요.
수많은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고, 그만큼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혁명에 반대할 것인가, 지지할 것인가라는 선택의 기로에 섰어요. 많은 기자들이 더 안전한 쪽을 선택했지만, 저는 다른 입장에서 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것은 제 선택이었고, 지금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선택은 저에게 큰 책임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기자들이 언론 활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들이 반드시 석방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Q. 한국의 난민제도에서 꼭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나요?
“지금까지 우리는 한국의 난민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왔지만,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여러 활동을 이어오고 있고, 이번 달에도 한국 난민 포럼을 진행했습니다.
이런 작은 발걸음들이 모이면 난민 제도를 조금씩이라도 개선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특히 지금 제도 안에서 오랜 시간 ‘기다림’ 속에 삶을 보내고 있는 난민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들에게는 그저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필요한 변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행동해야 하고, 여러분도 이 변화에 동참해 주시길 부탁드리고 싶어요.
앞으로 혹시 다른 난민의 이야기를 다루는 행사나 자리가 있다면, 여러분이 직접 참여하거나 또 다른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 연대가 변화를 만들어낸다고 믿습니다.”
티타임에서 미처 다 나누지 못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도서관 1층 ‘세상을 여는 창’에서는 샤이마님의 삶과 여정을 담은 전시가 1월 6일까지 이어집니다.
난민과 디아스포라, 이주노동자에 관한 G81. <당신은 나를 ___이라 부르네> 컬렉션과
샤이마 님이 이집트에서 탈출해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활동가로서 활약한 이야기, 물건들을 전시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