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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팬데믹 시대, 아픔과 살아간다는 것> 포럼에서 주고받은 이야기 02

작성자 : 느티나무 작성일 : 2021-01-22 조회수 : 7,598

 



 

# 의료 커먼즈가 가능하려면? 

 

백영경 (레퍼런스패널)
커먼즈는 어떤 공통적인 기반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특정 공동체나 지역은 아니다. 여러 단위들이 함께할 수 있는 어떤 공통의 감각이 커먼즈의 핵심인데, 좋은 공통의 감각을 가지는 것. 그게 커먼즈를 만들어나가는 데 있어 중요한 시작이다. 

그래서 조한진희 작가님이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늘 아플 수 있는 몸이고, 누구나 아프면서 살아간다는 사실이 사회를 조직할 때 기본이 되어야 한다. 그 아픈 몸을 공통의 감각으로, 기반을 삼아 만들어내는 여러 공통의 활동. 이런 게 커먼즈인 거다. 큰 경험도 있어야 하고 작은 경험도 있어야 한다. 그런 모든 것이 모여서 커먼즈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도서관이 필요한 게, 우리가 먹고사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거다.(웃음)

하고 싶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공공의료가 굉장히 중요한데 뭔지 쉽게 알기는 어렵다는 거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 공공의료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공공병원 말고는 환자들을 받지 않는 상황을 겪으니  공공병원이 좋은 것처럼 됐지만, 지금까지는 공공병원의 인식이 좋진 않았다. 공공은 싼 거, 좀 부족한 것처럼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돈이 없는 시민들이 가는 곳이 어떤 의료원처럼 여겨지니 사람들이 안 좋아했던 거다. 그래서 공공의료가 이제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하지만, 공공의료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다 다른 생각을 한다. 감염병 병원도 그렇다. 팬데믹을 평상시에 늘 대비하고 살 수 있는 사회는 없다. 코로나 같은 재난이나 사고는 터지는 거고, 다음 번 팬데믹은 어떨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의논하고 준비해서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공공의료를 쉽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의료를 공공재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의료는 공공재가 될 수 없다. 공공재가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공공재라고 그러면 어디서 그냥 주워 올 수 있는 것 같이 생각하고, 국가가 돈을 내면 의료가 주어지는 것 같지만 사실 의료는 누구에게나 다 풍족하게 주어질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무한정의 재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준의 의료를 모든 사람들이 공공재로 누리게 해야만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만 그게 공공재가 될 수 있다. 그다음에 어느 만큼이 필수적인지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코로나 순서도 사실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우선 접종이 60세 이상이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둘러보면 나보다 더 튼튼한 노인이 많은 것 같고 빨리 맞고 싶고…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그 제약을 만들어내는 어떤 기반이 커먼즈를 통해 생각한다면 가능하다.  커먼즈로서의 의료가 공공재로 제공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공동체를 보면 공공의 지원이 중요한데, 공공의 지원에 너무 의존하는 경우가 경향이 있다. 커다란 공공성이라고 국가가 공공병원을 어서 지어내야 한다고 하는데 정부 차원의 이야기와 정책도 중요하고 해야 하지만 그렇게 해서 전부 다 이룰 순 없다. 실제로는 지역의 기반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필요한 걸 찾아 메꾸고 돌보고 하는 그런 노력이라는 게 있어야 공공도 작동을 하기 때문이다. 공동체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보현 (느티나무도서관 사서)
두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공통의 감각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어떤 몸이 정상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지, 또 어떤 아픔의 감각이 공유되지 않는지. 





# 코로나 이후의 돌봄 

김보현 (느티나무도서관 사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안에서 돌봄두레를 이야기하셨는데, 돌봄두레가 바로 와닿지 않을 사람들을 위해, 작가님이 생각하는 돌봄두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다. 돌봄두레를 가장 쉽게 실천하거나 참여할 수 있는 방법도 궁금하다. 

조한진희 (레퍼런스 패널)
사회가 취약하고 아픈 몸을 표준으로 잡는다고 할 때 가장 크게 변해야 될 게 돌봄이다. 코로나 이후에 돌봄과 관련해 굉장히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돌봄은 집 안에서, 여성의 역할로, 무상노동으로 존재했다가 10~20년 사이 많은 노력들을 통해 일부가 사회로 나와, 요양보호사부터 새로운 여러 직군들이 생겨나게 됐다. 

그런데 돌봄의 사회화를 주장하는 게 곧 돌봄의 시장화는 아니다. 돌봄이 공동체 안에서 삶의 일부로 들어오는 과정이 필요하다. 돌봄을 전부 돈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으로 돌봄의 사회화가 진행되면서 여성들이 저임금의 열악한 환경에서 돌봄을 수행하게 되었고 저임금 노동으로 계급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사실 돌봄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의 존재 취약함을 인정하면 인정할수록 중요해지는 일이다. 그것을 인정할 때 누군가를 돌보고 돌봄받는 것이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다들  자기가 돌봄의 대상이 되는 것을 힘들어한다. 몸이 아프게 되면 주변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돌봄을 받아야 하는데, 자기가 그런 돌봄을 받아야 되는 경우를 못 견딘다. 내가 누군가의 도움을 통해서 대소변의 용변처리를 해야 할 때도 수치스러워한다. 그래서 우리가 돌봄의 어떤 부분들은 사회화하는 과정에서 시장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리 몸을 잘 돌보고, 잘 돌봄받는 몸으로 변화시키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돌봄을 시장화하지 않으면서 사회화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면서 제가 생각한 게 건강두레와 돌봄두레다. 

뭐냐 하면 혈연 가족이 아닌 관계에서 돈을 매개로 하지 않으면서 돌봄을 주고받는 공동체다. 이를테면 사소하게는 보호자가 필요한 건강검진을 할 때 동행하는 것이다. 1인 가구라면  누구랑 같이 가야 할까? 애인이나 가족을 호출해 같이 가는 방식도 있겠지만 만약에 돌봄두레가 있다면 “제가 이런 게 필요한데 동행하실 분?” 하면서 나와 동행할 누군가를 찾고 나 또한 돌봄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제공할 수 있다. 



# 돌봄의 윤리

조한진희 (패널)
사실 가족 안에서 돌봄을 주고받거나 요양보호사를 고용해 돈을 주고받는 관계일 때는 돌봄의 윤리가 적절하게 작용하는 게 쉽지 않다. 이를 테면 가족 안에서 돌봄을 주고받을 때는 “엄마니까” 이런 식으로 퉁치고, 함부로 대하고. 요양보호사는 내가 돈 주고 고용했으니까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 받는 사람이 요양원에서 돌봄 노동자들이 그 노인을 학대했다 이런 것만 보도되지만 요양보호사 노동자들을 만나보면 그 돌봄을 받는 이들로부터 성희롱과 폭력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게 많이 드러나지 않는데 우리가 돌봄을 주고받는 윤리 같은 게 되게 형성되지 않았다. 그 배경이 됐던 것은 돌봄이 가족 안에 있거나 시장화되었거나, 이 양쪽밖에 없어서 우리가 돌봄을 할 형성할 토대가 없었던 사회였던 거다.  누군가를 잘 돌보는 몸도 중요하지만 나를 돌보는 사람에게 윤리적으로 잘 대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것을 훈련하는 것이 돌봄두레가 될 수도 있겠다. 


# 질의응답 



레퍼런스 패널의 이야기를 들은 1부에 이어, 2부에서는 이웃들이 직접 남긴 질문을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눴습니다. 


Q. 완치가 어려운 병이라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의사의 진단을 거부했었어요. 정신이 문제이니 생체지표 없이 관찰된 증상으로만 내린 진단이니 틀릴 수 있다고요. 그러다 이제는 치료를 시작했어요. 질병에 대한 거부는 내 진짜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 생각 때문에요. 맞아요. 나는 아픈 사람이에요. 아마 오랫동안  아픈 채로 살아갈 거예요.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왜 어려웠을까요?

조한진희 (레퍼런스 패널)
아프다고 인정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지. 질문자의 마음이 느껴진다. 저도 그런 과정이 있었다. 건강한 몸에 대한 판타지가 굉장히 많은 사회다. 저는 지금은 굉장히 골골거리지만 제가 건강할 때, 아프기 전에는… 저 지금 “내가 왕년에 말이야” 이런 이야기 하는 거다. 

김보현 (느티나무도서관 사서)
라떼?

조한진희 (레퍼런스 패널)
네, 라떼. (웃음) 건강할 때는 출근하기 전에 수영을 20바퀴 하고 주말에 인공암벽을 했다. 굉장히 스포츠를 굉장히 좋아했다. 그래서 아팠을 때도 초기에는 내가 잘 관리하고 열심히 운동하면 나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전투적으로 투병 생활을 했었다. 

“아프면 모든 것을 잃는다.” 얼마나 잔인한 말인가. 굉장히 나쁜 말이지만 사실 한국 사회는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만드는 사회다.  몸이 아프면 굉장히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 많은 기회로부터 탈락되기 때문에 아픔을 인정하는 게 너무 너무 어렵다. 장애인이라는 걸 인정하는 게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혹은 여성이지만 자신이 여성이라는 걸 굉장히 인정하기 싫어하는 소위 말하는 명예남성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특히 20-30대, 취업기라고 이야기하는 이분들은 취업에 불이익이 있을까 SNS에 자기 몸이 아프다는 사실을 쓸 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요즘에는 인사과에서 다 개인 SNS를 확인하니까. 몸이 아프면 노동을 할 수 없다. 아주 아주 건강한 상위 몇 프로의 몸만 노동시장을 통과하게 만들고, 그래서 아픈 걸 숨기고 취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아프면 경제적인 노동도 못 하고 질병 수당도 없다.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내려가는 주요 이유가 의료비다. 아프면 모든 걸 잃는 사회인데 당연히 아픈 걸 인정하는 게 너무 힘들다. 그래서 아픈 걸 인정하기까지 굉장히 어려웠다는 이야기에 충분히 그럴 만했다고 생각한다. 아픈 몸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사는 게 굉장히  힘들겠지만, 아파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같이 만들어보자는 말을 드리고 싶다. 

L ZOOM 참가자 1 
조한진희 작가님 말씀에 매우 공감합니다. 저도 병을 진단받고 한동안 제가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아프기 이전, 일상적으로 하던 모든 것들을 할 수 없게 된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 몇 년이 필요했어요. 이제는 건강했던 시절을 잊게 되어서 아픈 상황이 일상이 된 것 같네요. 아프지 않으려면 운동밖에 없다는 의사의 말에 아픈데 참고 전투적으로 운동해야 하는 제 상황을 말씀해 주시네요^^;;

L ZOOM 참가자 2 
건강이 생산성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피곤은 과로 때문인데, 간 때문이라고 하잖아요. 



Q. 평범한 사람들에게 팬데믹은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같은 일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 경험하는 것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이제 와서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팬데믹 이전부터 기저질환처럼 존재하던 사회 문제들, 어떤 것이 있고 어떻게 받아들이며 해결하는 게 좋을지 두 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백영경 (레퍼런스 패널)
지금 한국에서 가장 눈에 두드러지는 건 돌봄의 이야기인 것 같다. 우리는 누군가를 돌볼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일단 방역이 어느 정도 되고 있기 때문에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은 다 일을 해야 한다. 모두들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정상적으로 애써서 낙오되지 않고 살아야 된다는 압력을 받고 있고 그러면서 오히려 여성들의 노동, 돌봄 부담이 더 커졌다. 돌봄 부담이 실직과도 이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코로나는 생태계와 기후,  지구가 가지고 있는 더 근본적인 위기상황과 연결이 되기 때문에 단순히 백신을 맞아 극복되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근본적인 반성을 하는 모습을 보이던 게 많이 사라졌다. 사실 작년 봄만 해도 사회가 더 많이 바뀔 줄 알았다는 분이 많았다. 우리가 더 돌봄 중심으로 가야 하고, 조금 더 생태적인 삶을 살아야 하며, 시장 논리에만 맡겼던 것을 반성하자는 이야기. 그런데 사회가 유지가 되니까 오히려 그 반성을 다 그만둬 버리고 갑자기 한국이 이 기회에 더 선진 사회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선진국 다 따라잡고 이제는 추격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이끌어갈 수 있다고. 그래서 반성을 하려고 그러던 문턱에서 멈춰버렸다.

그런데 지금 산재 사망 사고가 끊이지 않고, 쓰레기는 더 많이 생기고, 배달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 우리가 그전에 가지고 있던 문제를 고치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이 생기게 하고 반성하지 않는 게 한국 사회의 문제 아닐까? 

조한진희 (레퍼런스 패널)
저도 작년에 우리 사회가 많이 변화할 거라고 생각했다. 특히 생태계와 성장 담론이  변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 코로나가 자연과학이나 의학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코로나를 의학의 문제로 너무 좁게 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코로나 백신이 개발이 되고 치료제가 개발이 되면 해결될 문제처럼 여기면 이 문제를 영영 풀 수 없다고 보인다. 

작년만 해도 바이러스는 코로나가 끝이 아니며, 우리 삶의 전반적인 변화, 혁명적인 변화 없이는 인류가 망할 것이다라고 경각심을 가졌는데 이제는 또 다른 바이러스가 오면 우리가 또 새로운 치료제 백신 개발하면 될 것만 같다. 이 프레임을 벗지 않으면 인류가 정말 망할 것 같다. 2019년 12월부터 2020년 초기에 코로나가 지구에 사인을 주고 작년 여름에 엄청난 비는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라는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했는데 우리가 이 사인을 수신하지 않으면 정말 인류는 망하지 않을까?


백영경 (레퍼런스 패널)
사실 방역 이야기를 할 때 맨날 하는 이야기가 방역의 구멍이다. 그런데 방역의 구멍은 어디서 생기는가, 하면 물론 개인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문제도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크게 문제가 됐던 일은 요양 병원이나 구치소 같은 경우다. 구치소 사건도 더 문제가 될 줄 알았다. 

조한진희 (레퍼런스 패널)
동감.

백영경 (레퍼런스 패널)
시민 열 명 중 아홉 명이 차별과 배제에 반대한다고 하지만 구치소에 대해선 반응이 달랐다.  그래서 우리가 돌아봐야 될 건 “차별과 배제를 하면 안 된다는 마음이 어디서 멈추는가?”다. 이런 이야길 도서관 같은 데서 많이 하는 게 필요한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집단 감염이 그럴 만한 곳에서 많이들 생겼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 문제를 들여다보고 해결하는 방향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작년을 거치면서 주거 문제, 부동산 문제는 더 심각해졌고 갈등은 더 커진 것 같다. 자산을 둘러싼 사람들의 갈등을 보면 참 다들 절박하다. 여기서 밀려나면 한국사회에서 어디까지 밀려날지 모르니까. 기본 안전망이, 마음의 안전망이라는 게 없다. ‘재산과 관련된 결정을 한 번 잘못하면 내가 생각하는 중산층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불안들이 일상화되어 있다. 이런 자산을 둘러싼 불평등의 문제는 결국 우리가 또 다른 위기를 맞았을 때 사람들이 말하는 방역의 구멍이 된다. 코로나의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이 사회는 훨씬 더 평등하고 사회적 연대가 있는 곳이 되어야만 한다. 

Q. 팬데믹 시대에서 타인을 배려하고 생각하기 위해 개인, 공동체, 정부 등에게 필요한 역할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백영경 (레퍼런스 패널)
조한진희 작가님이 돌봄이 가족 아니면 시장밖에 안 남았다고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가족은 그나마 가족이 돌봐줄 수 있으면 다행인 게 요즘은 가족 자체가 여러 가지 이유로 가족 안에 돌봄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북유럽 사회도 지금 보면 결국은 국가가 시장에 남아있는 노동력을 구매해서 개인한테 배분하는 방식이다. 사회에서 시장모델 없이 작동하는 돌봄은 없어진 것 같다. 

특히 돌봄 노동은 여성에게 훨씬 집중이 되고, 한국사회에서는 더 그렇다. 긴 노동시간이 이유다. 사람들이 너무 길게 일해야 한다. 인력시장에서,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돌봄을 안 하고 일에 집중하는 노동자여야 한다. 그렇게 길게 일하고 나면 돌봄이라는 건 너무 힘든 거다. 

예를 들어서 한 부부가 아이를 낳았다라고 하면 말로는 독박육아라고 그러지만 보통 한 사람이 직장생활을 제대로 해가지고 돈을 벌어오는 게 여전히 경제적으로는 훨씬 더 말이 되는 모델인 거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같이 모든 걸 사회에 다른 체제를 놔두고  돌봄을 나눈다는 건 가능하지가 않다 그렇게 되면 여전히 조금 더 여유가 있는 여성들이라든가 아니면 노인여성들이라든가 이렇게 돌봄의 책임이 점점 그쪽으로 흘러간다. 

육아휴직을 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아이가 어렸을 때 한번 남성들이 돌보는 경험을 해보고 나면 돌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돌봄의 기쁨도 있다는 거를 알게 되면 그 이후 달라진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돌봄 휴직보다는 기본적으로 시민들이 노동시간을 줄이고 일자리도 좀 더 평등하게 나눌 수 있는 사회도 같이 가야 한다. 

그래서 사실은 우리가 지금 코로나 시대에 돌봄 사회의 전환이나 돌봄 중심 사회로의 전환이라고 그래서 돌보는 사람들한테 어떻게 하면 소득을 보전을 해 주느냐,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기도 하지만 그것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돌봄 중심 사회는 성장에서 벗어난 그런 탈성장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면서 노동 시간이 줄어들어야 한다. 


Q. 이번에 기말논문으로 두분의 논문을 참고해 질병의 개인화와 돌봄의 여성화에 대해 썼는데, 함께 강연하셔서 반갑고 좋았습니다. 질병권과 돌봄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해 나가고 싶은데 추천해 주실 만한 자료나 담론이 있을까요?

백영경 (레퍼런스 패널)
느티나무도서관 컬렉션 참조하시면 될 것 같다. 진짜다. <죽음의 자기결정권>, <나이 듦에 대하여> <정신질환에도 사회적 맥락이 있다> 등 지금 눈에 들어오는 것만 해도 굉장히 잘되어 있다. 도서관을 잘 활용하시면 좋을 것 같다. 포럼 준비하면서 자료를 받았는데 홈페이지에 <아픈 몸과 함께 삽니다> 컬렉션도  확인해 주시면 좋겠다.

조한진희 (레퍼런스 패널)
느티나무도서관을 오늘 처음 와봤는데 홈페이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자료들을 너무 잘 정리해 두었다.  <아픈 몸과 함께 삽니다> 컬렉션도 느티나무도서관 사서가 레퍼런스를 구하면서 기존에 정리하셨던 자료를 보내주셨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대중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자료들 단순히 단행본뿐만 아니라 논문이랑 기사까지 정리하셨다. 그걸 보시면 좋겠다. 

그리고 돌봄 관련해서,  2020년 5월에 <포스트 코로나 사회>라는 책에 공저로 참여하며 정의로운 돌봄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서 썼다. 낸시 프레이저라는 철학자가 ‘우리 모두가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로 노동 시장 포함해서 우리 사회가 재설계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지금 노동시장은 남성으로 전제하고 설계가 되어 있다. 퇴근하면 쉬고 에너지를 충전해서 다음 날 아침에 충전하는 걸 전제로 설계가 되어 있는데 사실은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소수다. 집에 가서 누군가를 돌보거나 여러 가지 가사노동을 해야 한다. 

워킹맘뿐만 아니라 요즘 노년의 부모는 비혼여성들이 비혼의 딸들이 돌보기도 하고, 1인 가구들은 집에 가서 해야 할 가사 노동량이 상당히 많다. 자기 돌봄을 위한 노동량.  돌봄시간을 전제해 두지 않는 기존 노동 시간 설계 자체를 재구성해야 된다. 그런 체제 전환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다 같이 죽는다.(웃음) 이런 경각심을 가지고 글을 썼다. 그 책 참고해 보시면 좋겠다. 


#포럼을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조한진희 (레퍼런스 패널)
우리 모두 이 재난을 각자의 방식으로 건너느라고 너무 너무 힘들었는데 그런 것들을 좀 지지하고 위로하는 것들이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가 이 재난을 계속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어떤 비판적인 대안이 필요하지만 너무 애쓰고 사는 사회인데 애쓴 것에 대한 위로가 너무 없다. 그 위로를 자기 자신에게 먼저 좀 그런 식으로 자기돌봄을 먼저 좀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우리는 재난 상황에 대한 긴장감이 높기 때문에 누군가가 파업을 하거나 정부가 이야기한 것과는 다른 방식의 이야기를 강력하게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한 긴장감과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게 익숙한 것 같다. 전쟁과 재난을 겪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지만,  부와 다른 목소리로 이 재난을 타개해 나가려는 각각의 집단들의 목소리를 우리가 너무 견제하지 않고 조금 잘 들어보는 방식도 필요한 것 같다. 우리가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 시민으로 코로나 그리고 이후에 감염병 시대를 잘 맞이했으면 좋겠다. 


백영경 (레퍼런스 패널)
학교 같은 데도 그렇다. 대학교, 고등학교 다 왜 얼마큼 열고 어떻게 해야 될지 뭐 정말 시험은 이 상황에서 대면시험을 봐야 되는지 볼 것이 아닌지는 물론 학생들이 스스로 결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학생들의 목소리가 이렇게까지 없는 게 정상인가? 자기의 생각을 가질 만한 나이에서 목소리가 너무 없었다는 것은 돌아봐야 한다. 

도서관 같은 곳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가 이 상황을 계속 장기적으로 겪는다면 어떻게 해야 될지에 대해서는 더 많이 생각하고 의논해야 한다. 코로나는 의료적인 판단만으로 다 결정할 수 없고, 그렇다면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가 훨씬 더 많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그런 데서 필요한 커먼즈다. 

‘우리’ ‘모두’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이 말이 참 묘한 말인 게 우리하고 모두하고 좀 다른 말이다. 커먼즈는 어떻냐면 우리는 우리인데 우리보다 더 큰 우리? 그러니까 모두의 마음. 우리를 넘어서는 존재를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이다. 미래세대를 생각할 수도 있고 생태계를 생각할 수도 있고 정말 차별받는 사람들을 생각할 수도 있고 소비를 하면서 착취해 왔던 어떤 자원들을 생각할 수도 있고. 확장된 시야를 가지고 우리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마음, 그러면서 다시 공동체로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이 커먼즈의 마음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조금은 달라지는 우리에 대한 감각, 우리의 눈을 가지고 좋은 결정들을 하면서 살아가다 보면 오히려 정말 재난이 우리를 더 많이 생각하게 하고 조금 더 슬기롭게 만드는 그런 기회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 




코로나 상황 속, 여러 변수와 함께 마을 포럼을 준비하면서 느티나무도서관 스태프들도 사람들이 몇 명이나 모일까,  
어떤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눠주며, 도서관에 오지 않고도 도서관을 꽉 채워주신! 모든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영상 후기도 곧 업로드 됩니다.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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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71. 아픈 몸과 함께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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